[필독서] 로버트에즈라파크 이민 언론과 통제
【13】 【美】帕克:《移民报刊及其控制》,陈静静、展江译,1922 年英文版,中国人民大学出版 社,2011。
(芝加哥学派及其传播研究代表作)
Robert Ezra Park. The Immigrant Press and Its Control. HardPress Publishing, 2010.
帕克在本书中的主要关注点是:媒体内容怎样影响公众意见?本书分为四部分,分别分析 了外语报刊存在的原因,移民报刊的背景、其与本地报刊的相互融合和移民报刊带来的启 示;广告、地方报刊的发展,都市报刊,都市报刊与战争和阶级斗争;报刊对移民状况的 反映,报刊的生存斗争;以及各类控制杠杆的机制。
한국어판은 없음
영문, 중문으로 공부하기
로버트 에즈라 파크 인물소개 참고
<지식백과>
로버트 에즈라 파크 Robert Ezra Park
사회학사전
출생 - 사망 1864년 ~ 1944년
사회학의 시카고학파를 창립하고 지도하였던 미국의 사회학자이다. 시카고학파는 1920년대와 30년대 초기에 번성하였는데, 미국사회학을 좀더 경험적인 지향성을 갖도록 하였다. 파크는 대학-대학원-교수직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사회학자의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다.
시카고대학에 소속되어 있던 약 20년 동안에 그는 사회학의 지적인 흐름을 형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여관찰에 근거한 보고양식, 사회문제, 특히 인종문제에 대한 관심, 도시 그 자체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연구의 장으로서 도시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짐멜의 이론과 당시 그 형성과정에 있었던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대한 관심 등은 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버제스(E.W. Burgess)와 함께 써 낸 그의 교과서(1921)는 여러 해 동안 가장 중요한 사회학교과서였으며, 여러 학생들의 지적인 방향정립에 도움을 주었다. 1934년 그가 은퇴한 이후 제자이자 동료인 휴즈(Everett Hughes)와 블루머(Herbert Blumer), 그리고 그들의 제자인 하워드 벡커(Howard Becker) 등을 통해 시카고 사회학은 강력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
로버트 E. 파크
사회학설사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하바드 대학에서 철학전공 석사학위를 받고서 기자가 되는 일은 흔치 않은 경우이며,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으며, 그 후로도 수년간을 언론인 생활을 하다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게 되는 경우는 더더욱 흔치 않은 일이다. 로버트 파크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다.
파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곧 미네소타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베블렌(Veblen), 워드(Ward), 쿨리(Cooley) 그리고 미드(Mead)와 같이 파크도 중부 변경지방의 소생이다. 그의 아버지가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크는 미네소타 대학에 등록했으며 2학년 때 미시간 대학으로 전학했다. 미시간에서 파크는 진보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스승 존 듀이(John Dewey)의 실용주의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것이 그가 졸업 후에 아버지의 사업의 뒤를 잇지 않고 그의 관심인 개혁에 관한 기회를 제공하여 주는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 이유이다. 경험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고 관념의 세계를 불신하였으므로, 사회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기회가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우선되어야 할 필수적인 요건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는 신문사에 있으면서 얻게 되는 직접적인 관찰이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신문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도시의 생태, 도시문제, 이민자들의 빈민지역 그리고 우범지역의 열악한 조건과 그것들이 가져 오는 도시적 기제와 그 부패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도시의 여러 신문사에서 일을 하였다.
뉴스와 뉴스의 제작에 항상 매료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크는 더 폭넓은 철학적 배경을 얻기 위하여 1898년 하바드 대학에 진학할 것을 결심하였다. 석사학위를 마친 후에 그는 공부를 계속하기 위하여 독일로 갔다. 그리하여 신칸트주의 철학자 빌헤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의 지도하에서 "대중과 공중"이라는 논문을 쓰게 되었다. 철학강사로서 하바드에 돌아온 직후, 그는 자신이 '학문의 세계에 대하여 싫증이 남'을 알고는 6년간의 학문 연구생활을 그만두고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그는 미국과 그밖의 지역에서의 인종간의 문제에 매료되어, 벨기에의 식민지인 콩고에 대한 벨기에 정부의 학정에 대한 폭로기사를 썼으며, 흑인들의 생활상을 알기 위하여 미국 남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Tuskegee Institute의 회장인 워싱턴(Booker Washington)을 알게 되어, 그의 비서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7년 동안 일하게 되었다.
1914년에 그는 그의 나이 50세에 시카고 대학의 윌리암 토마스(William Thomas)로부터 '미국의 흑인'에 대한 강의를 해줄 것을 부탁받고서 사회학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 시카고 대학에서의 그의 위치는 다소 불안정한 것이었지만, 1920년이 되어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20년대와 30년대 초기에는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파크는 그의 학생들에게 도시의 문제와 인종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불어넣으려고 애쓴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의 저작은 별로 많지 않다. 그의 주된 기여는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과 그의 학생들의 책에 소개문을 써 준 것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의 학생들이 사회문제, 특히 도시의 문제를 언론계에 종사했던 어떤 선구자보다도 더 정밀하고 정확하게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하려고 하였다. 이 분야에 있어서 그의 지도하에 쓰여진 도시의 갱 문제, 빈민촌, 직업 춤꾼들의 문제 등의 많은 목록을 보면, 그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파크는 일반적으로 아주 상이한 주제들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론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그는, 사회생활은 네 가지의 주요 과정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쟁, 갈등, 화해, 동화가 그것이다. 이 과정들은 사회질서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종과 종족집단의 '자연사'를 설명한다. 사회에 대한 정적인 접근방법을 탈피하여, 파크는 사회학을 '집단행동의 과학'으로 정의하고 고정된 사회구조가 아니라 비교적 유동적인 사회의 과정들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그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사회를 비교적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집단행동의 과정을 제시하고 도전하는 사회통제의 도구로서,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견해로 보면, 사회의 협동적 존재는 구성집단과 개인에 의해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다. 따라서 영원한 평형상태는 희망적이며 유토피아적 이상이 된다.
다윈의 '삶의 거미줄'(Web of life)에 의하여 약간의 영향을 받은 파크는, 상호의존적인 집단들간의 경쟁, 지배, 그리고 승계에 의하여 생물학적인 질서가 태동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집단들은 생태학적인 적응과 공간적 화해를 통하여 그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파크는 식물군과 동물군의 성장에 적용되는 과정들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인간은 다른 생물군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문화적으로 전달된 상징적이고 도덕적인 체계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측면에서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사회는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인간들은 더 좋은 경제적ㆍ지역적인 지배와 생태적인 환경을 위하여 경쟁하는 상호의존적인 개인과 집단들로 구성되며, 한편으로 그들은 상징적으로 확인된 연대, 합의 그리고 공동의 목적에 의하여 하나로 유지된다. 사회적ㆍ도덕적 질서는 사회통제, 규범적 유도, 그리고 초개인적인 활동에의 참여를 통하여 생존을 위한 경쟁적 투쟁을 완화시킨다.
여기에서 파크의 사회적 역할의 개념, 사회적 거리, 주변성, 자아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 이러한 많은 개념화는, 비록 그가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등과 같은 이전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파크가 완성된 사회학의 체계를 제공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일일 것이다. 그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학생들의 경험적 연구를 지도할 일반적인 사상들이나 민감한 개념들을 개발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사회변화의 과정 그리고 새로운 사회구성체의 출현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므로, 파크의 이론적 개념은 아직도 현대의 사회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도시민족지학과 인간생태학에 관한 시카고계의 '학파'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시카고 학파의 지배가 막을 내린 것은 대략 1935년으로 추정된다. 그 해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시카고 학파의 지배를 받았던 미국 사회학회는, 작은 쿠데타를 통하여 American Sociological Review라고 하는 새로운 그 자체의 학회지를 창간하기에 이른다. 2년 후 탈코트 파슨즈(Talcott Parsons)의 『사회적 행위의 구조』의 출간은 시카고 대학에서 개발된 이론과는 차이가 있는 이론적인 방향의 출현을 알린다. 이 새로운 경향은 그 후 4반세기 동안 미국 사회학을 지배하게 된다. 점차로 전문화되고 제도화되면서, 그리고 시카고 지배의 유아기를 거쳐서 사회학은 성숙한 단계로 들어가게 되었다.1)
로버트 파크 Robert Ezra Park
두산백과
미국의 사회학자이다. 도시, 인종, 인격, 집합행동, 매스커뮤니케이션등의 연구분야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 업적을 남겼다. 주저로《과학으로서의 사회학입문》등이 있다.
출생-사망 1864.2.14 ~ 1944.2.7
국적 미국
활동분야 사회학
출생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하비빌
주요저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입문》(1921)
본문
펜실베이니아주(州) 하비빌 출생. 과학적 사회학 창설자의 한 사람이다. 1887년 미시간대학교 졸업 후 11년간의 신문기자생활을 거쳐, 1898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 철학을 공부하다가 독일에 유학,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10년 동안 흑인교화사업을 하였으며, 1914년 시카고대학교 강사, 1923~1933년 교수 및 학과장을 지냈다.
미국의 사회학을 종래의 철학적 사회학으로부터 귀납법과 연관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으로 전환시켰는데, 특히 도시·인종·인격·집합행동·매스커뮤니케이션 등의 연구분야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종래에 미흡하였던 도시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인간생태학(人間生態學)을 창시하였고, 도시를 조직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포괄적으로 집대성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입문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Sociology》(1921, E.W.버제스와 공저)은 널리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