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文森特・莫斯可:《传播政治经济学》,胡正荣译,华夏出版社,2000。(传播政治经济学名作)
Vincent Mosco.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cation. SAGE Publications Ltd, 2009.
本书将传播政治经济学放在具体的社会关系和社会现状的历史进程中考察,依据社会正义 的标准加以评价,是目前全球传播学界公认的批判传播理论的标志性作品。书中详细阐述 了政治经济学的分析工具和理论积累路径,且以此解析当今全球化、数字化、商业化的传播产业、传播制度和传播现象背后权力扮演的角色。
한글판 종이책 구입(택배 예정)
빈센트 모스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체계적 이론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빈센트 모스코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적 연구가 다루어야 할 세 가지 과제로 상품화, 공간화, 구조화를 제시했다. 특히 학문의 실천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 성찰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 정보 시대, 지식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빅데이터 경제학을 중요시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우려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정리한 학자
빈센트 모스코(Vincent Mosco)는 미국 미디어 정치경제학자로 조지타운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를 졸업(1970)하고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사회학 박사(1975)를 거쳐, 캐나다 퀸스대학교(Queen’s University) 사회학과 종신교수(Professor Emeritus)로 재직 중이다. ‘캐나다 커뮤니케이션 · 사회연구 및 사회학교수회’ 의장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 학자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주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 4세대를 지나면서 공통의 여구 주제는 보통 다섯 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첫째 미디어의 소유 구조와 정치권력의 관계, 둘째 독점자본주의에서 미디어의 역할, 셋째 미디어 수용자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수용자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하는 수용자 연구, 넷째 정보 왜곡으로 민주주의의 정치적 자유를 훼손하는 현상, 다섯째 (‘뉴미디어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주장의 근거인) 정보 접근의 불평등과 디지털(이용)의 차이(gap) 혹은 격차(divide)다.
모스코는 허버트 실러(Herbert Irving Schiller)나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W. McChesney)와 같이 1세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초기에는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의 일부 혹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들의 미시적 사례를 탐구했다. 그리고 1996년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국제학회(IAMCR,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edia and Communication Research) 학술대회를 계기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라는 저서를 발간하게 된다.
저서는 정치경제학의 개념 규정과 이를 둘러싼 역사적 분석, 사회적 총체성 이해, 도덕철학적 고려, 실천적 의지 등 정치경제학의 핵심 논의들을 다루고 있다. 모스코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적 연구가 다루어야 할 3대 과제로 상품화(commodification), 공간화(spatialization), 구조화(structuration)를 제시했다. 특히 학문적 · 실천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성찰과 쇄신을 주장했다.
지식 노동자
모스코는 1979년 노동자, 노동자 계급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한 이후 1세대 정치경제학 연구자들과 노동자 · 계급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시도했다. 1980년대에는 정보사회와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했다. 북아메리카, 즉 그가 주요 연구 활동을 했던 캐나다의 미디어 상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2005년 『디지털 숭고함(The Digital Sublime: Myth, Power, and Cyberspace)』이라는 책을 통해 디지털 기술과 사이버공간이 만든 신화와 권력을 논의했다.
한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만든 ‘지식 노동자(Knowledge Workers)’라는 말을 인용하며, 커뮤니케이션의 노동을 비판적으로 연구했다. 지식 노동자는 주된 업무가 지식과 정보 조작에 의존하는 노동자로 정보화사회에서 중산층의 고학력 주류 전문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지식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식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결국 실적과 성과로 평가받으면서, 끝이 없는 경쟁 체제 아래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된다. 결국 지식사회는 혁신적 기업가 정신을 가진 노동자를 요구하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보화사회를 살아야 하는 지식 노동자들은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빅데이터의 정치경제학
모스코는 2014년 클라우드 기술 담론을 연구한 저서를 발표했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의 정치경제학(To the Cloud: Big Data in a Turbulent World)』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관리하는 데 별도의 노력이 들지 않고 컴퓨팅 서비스 제공 업체와 상호작용이 없이도 즉각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식으로 편재하며(ubiquitous), 설정 가능한(configurable) 컴퓨팅 자원들을 이용자가 필요할 때 접속해서 이용하는 방식의 기술을 말한다. 클라우드는 빠르고 편리하며, 환경 친화적이고, 비용 절감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주목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거리에서도 데이터,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등을 개인과 조직에게 저장 · 처리 · 분배 ·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업계의 전문가들은 실제 클라우드 컴퓨팅이 변혁과 변화의 기술이 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게다가 이 시설들은 통신 시스템과 연결되어 요금을 내는 사람들에게는 스마트폰, 태블릿PC, 컴퓨터 등에 즉각적으로 데이터와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빅 데이터 분석도 주로 클라우드 시설에 저장된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하는 분석을 말한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분석은 정보화사회의 떠오르는 차세대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클라우드 기술 담론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모스코는 정량적 데이터에 대한 상관관계 분석만 추구하려는 연구들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역사적 · 이론적 · 정성적 · 인과관계 분석이 더욱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주요 연구
• Broadcasting in the United States: Innovative Challenge and Organizational Control(1979). NJ: Ablex.
• Pushbutton Fantasies: Critical Perspectives on Videotex and Information Technology(1982). NJ: Ablex.
• Labor, the Working Class and the Media(1983). N.J.: Ablex.
• Policy Research in Telecommunications(1984). NJ: Ablex.
• Changing Patterns of Communication Control(1984). N.J.: Ablex.
• Popular Culture and Media Events(1985). NJ: Ablex.
• The Political Economy of Information(1988).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 The Pay-Per Society: Computers and Communication in the Information Age(1989). Toronto: Garamond and N.J.: Ablex.
• Democratic Communication in the Information Age(1992). N.J.: Ablex and Toronto: Garamond.
• Illuminating the Blindspots: Essays Honoring Dallas W. Smythe(1993). N.J.: Ablex.
• Continental Order?: Integrating North America for Cyber-Capitalism(2001). New York: Rowman and Littlefield.
• The Digital Sublime: Myth, Power, and Cyberspace(2004). Cambridge, MA: MIT Press.
• “Double themed issue on Knowledge Workers”(2006).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6).
• Knowledge Workers in the Information Society(2007). Maryland: Lexington Books.
• The Laboring of Communication(2008). Maryland: Lexington Books.
• “Introduction: Marx is Back–The Importance of Marxist Theory and Research for Critical Communication Studies Today”(2012). Journal for a Global Sustainable Information Society, 10(2): 127~140.
• Critical Studies in Communication and Society(2014). Shanghai: Shanghai Translation Publishing House.
• To the Cloud: Big Data in a Turbulent World(2014). CO: Paradigm Publishers. 『클라우드와 빅데이터의 정치경제학』(2015). 백영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인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21세기, 우리는 상상 그 이상의 기술 발전을 경험하며 고도로 발달된 미디어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체 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도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들은 퇴행적이거나 답보적이기까지 하다.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우리는 신인류에 걸맞은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를 만날 수 있지만,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자신은 쉽게 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생각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Communication)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학문에서 파생된 것으로 정치경제학이 갖는 학문적 문제의식과 그 출발점을 같이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경제학이 인간을 둘러싼 그리고 인간과 관련된 모든 행위와 행위자들 그리고 현상에 관한 관심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볼 때,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mass)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하는 미디어가 급속도로 확산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문적 질문을 공유할 수 있다.
정치경제학과 현대사회
자본론을 오랫동안 강의하면서 2001년 정치경제학에 대한 책을 펴낸 김수행은 2012년 세 번째 개정판에서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 ‘세계 금융 위기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인가?’, ‘왜 구직 창구 앞의 줄은 길어지는데, 해외여행객은 늘어나는가?’. 즉, 정치경제학자들은 당대의 인간 삶을 둘러싼 정치와 경제에 깊은 질문을 갖고 시장, 기업, 정부, 자본, 노동, 상품, 화폐와 같은 정치 · 경제 활동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문제적 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때문에 비극적인 근대사의 흔적들이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없이 필요한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기업은 노동자를 대규모로 해고하거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전셋값이 폭등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 정책을 외치지만,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고 기업들과 경제 투자를 두고 줄다리기만 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은 결혼과 연애, 출산을 포기하다 못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고 있다. 언론은 이들을 3포 · 5포 · 7포 세대라고 부르며, 신자유주의 시대 비극의 아이콘으로 포장하거나, 혹은 무능한(?) 혹은 불쌍한 젊은 세대라는 대안 없는 현상만 나열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징후들은 인류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한 이래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자본가와 기업가가 자기 자본을 세계 어디에라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에는 심지어 문제적 상황들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만의 비극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도록 주류 언론은 대중(public)의 눈과 귀를 막고, 학자들은 정치와 경제를 비판(Critique)하지 않는다.
학문으로서 정치경제학은 어떤 관점에 서 있는가.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에서 논의하는 시장 · 기업 · 정부 · 자본 · 노동 · 상품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윤 창출에 동원되는 소비자보다는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노동자와 시민을 탐구하고 있으며, 기업의 사유재산 보호를 옹호하기보다 자본가의 비정상적 자본축적 방식과 자본권력의 비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대의 정치와 경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적 사건과 상황을 찾아 성찰과 비판을 하기 때문에 비판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나 문화연구, 저널리즘, 미디어 경제학 같은 학문과도 만나는 지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본과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경제학
독일인 카를 마르크스(Karl H. Marx)가 집필했던 『자본론(Das Kapital)』 시리즈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한 세기 반이 지났지만, 현대인들은 지금도 ‘자본’과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를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독재정권 당시, 『자본론』을 금서로 지정하고 출판한 사람을 구속하기도 했는데, 『자본론』에 대한 전도와 해석 그리고 비판 연구는 혁명적인 디지털 기술 산업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진행형이다.
최근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라는 책에서 지난 300년간 축적된 세계의 자본을 해석했다. 그리고 경제 강대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자본주의에 어떤 미래가 가능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글로벌 독자가 늘어날수록 피케티의 상당한 연구에도 의미가 부여되며 회자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모호하고 냉소적임에도, 한 시대의 현상과 사조로서 머물지 않고 21세기에 오면서는 좀 더 많은 학자와 언론 그리고 대중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돈벌이가 된다면 윤리적 · 미학적 · 철학적 · 도덕적 · 정치적 · 문화적 · 감정적 고민들이 무시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라고 받아들여지면서 자본주의적 사고, 즉 자본 중심주의적 관점이 학문 영역에서 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말이 되면서 자본주의가 독점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자본축적이 개인의 축재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의 정치 · 사회 · 문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본주의는 선동의 이데올로기의 도구 이전에,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홍기빈, 2010). 때문에 근현대사회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 특히 정치 · 경제학자들에게 ‘자본주의’는 현상으로서보다는 이론과 방법론을 동원해 탐구해야 하는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반면 마르크스나 혹은 후기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학문적 접근 방법들을 보면, 정치와 경제를 밀접한 상관관계로 보는 관점과 정치적인 것을 배제하고 경제적인 것에 치중하는 관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학자의 이데올로기가 연구의 방향과 결과에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통념이라는 전제로 볼 때,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신고전주의 패러다임은 그와 반대되는 의견의 학자들과는 분명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과거 정치와 경제를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던 고전적 정치경제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끄는 신고전파 경제학(주류 경제학)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세분되었고, 좁은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대중에게는 경제학이 수학과 물리학에 가까운 학문일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는 이미 인간의 사회적 활동으로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발전된 인간의 생활양식 그 자체다. 사회와 지식의 어원을 규명했던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에 따르면, 경제학(economics)이란 용어는 그리스어의 ‘가정 · 가구’를 의미하는 ‘oikos’와 ‘법’을 의미하는 ‘nomos’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은 본래 가정관리를 지칭한다고 한다. ‘정치’(political)는 고대 문화 시기에 정치조직의 기본 단위인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polis’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의 기원은 가정과 정치적(도시국가) 가구들의 관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임스 스튜어트 경(Sir James Steuart, 1967)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보다 15년 전에 그의 저술에서 “가정에서 경제인 것이 국가에서는 정치경제학이다”라고 주장했다(Mosco, 1996).
정치와 경제의 통합적 이해
스탠퍼드(Stanford, 2008/2010)에 따르면, 사실 최초의 경제학자도 자신의 학문 분야를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컨대 경제학과 정치학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정치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상황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경제적 안정은 정당 · 정부 심지어 사회제도의 존망에까지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물론 정치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쟁과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의 영역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제학의 접근은 누구의 이해관계가 우세하고, 어떻게 갈등을 조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매우 정치적인 과정으로 정치학의 학문적 고민과 맥을 같이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경제학과 정치학의 밀접한 관계를 얼마나 인정하고 집중적으로 접근했는가에 따라, 정치경제학은 당대의 첨예한 문제에 접근하기도 하고 혹은 배제되기도 했으며, 다양한 연구 방법의 실험과 응용 과정을 겪었다.
모스코(Mosco, 1996)는 정치경제학은 첫출발 때부터 기술적인 것과 처방적인 것을 한데 결합시킨 것이라고 보았고, 스마이드(Smythe, 1991)는 정치경제학은 여러 시기, 여러 곳에서 자문관들이 다양한 사회조직의 지도자들에게 자문한 실제와 이론의 집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학문으로서 정치경제학은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경험하고 검증되며 부활하고 재조명받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당대의 사회변동을 주목하며, 관찰하고 설명하고자 했던 학자들의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를 경험하고 있고, 어떤 사회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공통 질문을 공유했던 것이다.
이는 예부터 인간과 자연이 ‘사용을 위한 생산을 하던 것’의 경제에서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서의 경제로 변화시킨 16세기 영국의 ‘울타리치기(인클로저)’에서 그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도 있고, 농업 생산과정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낳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고민하는 이른바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합리적’ 사고를 논의했던 17세기 아이작 뉴턴(Isaac Newton)과 존 로크(John Loke)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미개간지나 공유지 등으로 공동 이용이 가능했던 토지에 담이나 울타리 등의 경계선을 쳐서 사유지화하는 이른바 토지 경영의 현대화를 시도하는 울타리치기(인클로저)가 활발했다. 이처럼 생산자와 생산수단(토지)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농업 자본주의’의 바탕이 이뤄졌다. 하지만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인클로저가 모든 생활 수단을 빼앗긴 프롤레타리아와 생산 수단을 독점하는 사적 소유자, 즉 부르주아계급이 출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가 강력한 항상성으로 존재감을 보여 주었던 시기, 즉 ‘자본’과 이를 둘러싼 학문적 주요 논의가 본격적으로 발현되었던 시점에서 정치경제학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초기 정치경제학자들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지 않고 논의한 그 지점이, 앞서 언급한 대로 현대사회의 주류 경제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자본’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정면에서 논쟁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은 정치경제학자들(혹은 정치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논쟁점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론적 논쟁과 방법론적 접근은 20세기 정치학과 경제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실체 같은 ‘자본’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케임브리지 논쟁(Cambridge Controversy)’ 이후, 정치 · 경제학자들은 냉전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에서 벗어나 좀 더 활발하게 ‘자본’을 논의했고,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정치경제학을 학문으로 발전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자본’에 대한 당시 논쟁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 학자들도 있었다. 경제 발전과 경제 분석을 이론화한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이라는 말을 현명하게 그저 화폐적 · 회계학적 의미로만 쓰는 데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공연히 그 의미를 ‘근원적으로 해명’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우리는 혼동만 가득 안고 소용도 없는 어리석은 논쟁에 휘말리고 말았다”고 한탄했다(홍기빈, 2010:36). 이는 20세기 후반에 왕성했던 경제학자들의 관점을 대변했던 것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고전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의 입장과 대치된다.
보통 고전적 정치경제학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직전 그리고 미국이 독립한 1776년경부터 학문적 논의를 시작한다. 당시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발표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생산의 3요소를 자본 · 노동 · 토지로 보고 자본에서 나온 소득, 즉 ‘이윤’과 그 이윤을 가져가는 ‘자본가’ 계급의 생산 활동을 연구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는 대규모 공장 생산과 분업을 통해 생산을 늘릴 수 있으며, 자본가들이 혁신과 자본축적을 주도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그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경제 용어를 만들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장규제를 철폐하고 무역을 확대하며, 초기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경제학의 갈등과 비판
사실 유럽은 16세기에 많은 전쟁으로 인해 전쟁 비용에 시달리면서 17세기에 와서는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한 규모의 경제 모델로 화폐경제 제도를 도입한다. 즉, 국가가 국내 조세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화폐경제를 부양하고,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면서 국내로 유입(수입)되는 금과 은은 통제를 하는 ‘중상주의(mercantilism)’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당시의 국가를 향해 ‘지나친 규제와 특권으로 시장을 억압하고 규제한다’고 비판했다(홍기빈, 2010).
한편 애덤 스미스를 자유시장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과 변화를 중시하며, 계급 간의 갈등 관계를 분석한 고전파 경제학(classical economics)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미스 이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자유무역을 하면 모든 나라가 이익을 본다는 자유무역이론(theory of trade)과 비교우위이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을 주장했다(Stanford, 2010:70~71).
즉, 리카도에 의해 정립된 비교우위(比較優位)이론은 국제무역에서 한 나라의 어떤 재화가 비록 상대국의 것에 비해 절대우위에서 뒤처지더라도 생산의 기회비용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인 우위를 지닐 수 있다는 개념이다. 결국 비교우위는 비록 한 국가의 모든 재화가 상대국보다 절대우위에 있더라도 상호 무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유를 뒷받침하게 된 것이다(최병선, 1999).
이것은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 관계를 맺고, 협동과 분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생산 주체로 조직한다는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었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출연한 기계의 생산력 앞에 무력한 인간의 노동과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실제 기계가 인간의 신체 역량을 보조하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생산 활동 자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자본’에 대한 인식에 전환을 주는 데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자본 생산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은 21세기가 되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뀌었다. 실제 21세기 경제 강대국(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및 EU 등)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 확산되면서,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고전적 경제학자들의 논리로부터 그 정당성을 찾고 있다. 고전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은 FTA가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을 주로 공유하게 된다.
리카도의 경제 이론이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던 시절, 이론의 논리적 구조나 사상적 지향성에서 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제시한 학자 중 대표적인 이가 마르크스다. 리카도는 자본이 그 자체로 생산성의 원천이 아니라, 그 자본을 생산하는 데 투하된 기존의 노동의 가치를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는 ‘노동가치론(Labor theory of Value)’을 주장했는데, 마르크스는 노동의 ‘양도’와 ‘소외’라는 개념을 가지고 리카도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예컨대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어떤 정신적 문화를 공유한 집단의 일원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연적 ·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또 자신의 존재와 감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임금노동자들은 (그 몇 푼 되지 않는) 임금을 손에 넣기 위해 (엄청난 우주와 인간 비밀의 담지자인) 노동을 자본가에게 ‘양도’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노동자 본인은 자신의 몸이 행하고 있는 노동 자체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당하며, 노동과정은 자신이 계획한 것에서 분리되고, 자본가의 명령과 계획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산업혁명 이후 더욱 황폐해진 노동자들의 삶을 동시대인으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는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처럼 팔지 않고는 먹고살 방법이 없는 사회적 계급의 출현을 보고 이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시켜 최대한의 노동 가치를 착취하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에서 임금의 가치를 뺀 나머지, 즉 ‘잉여노동’(잉여가치)을 모두 ‘이윤’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과 항상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노동자를 대체할 기계 자본을 구입해야 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확장될수록 자본, 특히 기계와 같은 ‘불변 자본’의 형태를 띤 자본은 계속 축적되지만, 노동자들은 점점 더 혹사당하면서 자본가들에게 잉여노동을 착취당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노동 가치론을 주장하며, 신성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이전의 입장을 반박했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기계에 종속되어 가는 인간, 나아가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대표 학자가 되었다. 또한 그의 급진적이고 시대를 통렬히 비판하던 이론들은 이후 사회주의 선전 · 선동과 노동운동에 적극 활용되기도 했다(홍기빈, 2010:92~95).
하지만 노동자와 자본가의 사회적 관계로 자본주의를 설명하려 했던 그의 이론은 이후 다른 시대를 살게 되는 학자들에 의해 한계점을 지적받게 된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주장은 자본가들이 사적인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생산 활동의 결과로 보지 않았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후 이윤을 포함해야 한다는) 상품 가격이 노동 가치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Stanford, 2008/2010:72).
어쩌면 마르크스 이후의 세대들은 거듭되는 자본주의의 호황과 불황으로 경제적 불안정과 예상치 못한 정치적 저항과 갈등 · 대립이라는 다른 시대를 경험하면서,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재해석하는 것으로 당대의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냉전 시절에는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해석적 연구들조차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으로 편향적으로만 혹은 소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가 연구했던 노동(노동력), 기술, 자본, 생산, 계급, 이윤, 잉여 그리고 권력 같은 키워드들은 21세기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핵심적 개념들로 여전히 진행형이며, 이론적 · 방법론적 연구의 주요 쟁점들이 되고 있다.
‘자본’을 이론화하려 했던 리카도와 마르크스의 관점을 비교하면, 마르크스는 리카도와 달리 자본이 생산에 투여되는 ‘기계’와 같은 사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자본은 두 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리카도가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의 모습을 띠고 있는 ‘불변 자본’, 특히 기계류 같은 자본이다. 둘째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양도하면서 임금을 받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사회적 관계’로서 자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자본은 사실상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끝없이 착취하며, 한없이 팽창하는 자본가의 ‘권력’을 의미한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당시 유럽이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들에 의해 국가기구 · 법률 등이 장악됐을 뿐만 아니라 정치 · 교육 · 종교 · 철학 · 예술 · 문화 같은 사회 전반에서 자본이 힘을 발휘하던 상태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못하고, 결탁 · 공모되는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했던 그의 학자적 시대정신은 자본주의가 세계화 물결을 타고 보편적 가치로 확산되어 버린 21세기의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정치경제학
한편 산업자본주의의 미래를 비판하고 비관했던 마르크스의 예견은 20세기 초 세계 자본주의에서 현실이 되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대량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었으며 이는 단시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실업자와 빈민층이 급증하고, 세계무역도 축소되면서 대공황은 정치 영역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대공황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된 나라들에선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나치즘 ·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가 등장했고 유럽 내 경제 강국들은 정치 · 경제적인 이유로 대립하며 갈등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식 금융자본 경제 시스템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물론 대공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고자 했던 학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지만, 당시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수요를 창출하려는 정책에 대공황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M. Keynes)의 주장이 뉴딜 정책에 일부 도입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예컨대 케인스 학파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고용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소비와 투자 감소, 실업 증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조세와 정부 지출, 이자율을 조정하면서 완전고용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케인스 이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미국 정부가 막대한 군비를 지출한 덕분에 공황은 사라졌다(Stanford, 2008/2010:76).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뒤 전후 복구와 재건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부 지출은 늘고, 임금과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낙관적인 자본주의 시대가 약 30년 동안 이어졌다. 경제학에서는 이 시기를 ‘황금기(Golden Age)’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제 정치경제가 급변하면서, 정치와 경제 특히 경제는 정치보다 더 치열하게 생활경제에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학문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97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에 불황과 불안정이 커지면서 황금기도 끝났고, 경제학자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많은 나라에서 주류로 떠오른 주장이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 경제가 불안정해졌다. 이전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주요 정책을 부활하자’는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신고전파의 가정과 연구 방법에 반대하며 포스트케인스 학파(post-Keynesian)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미하우 칼레츠키(Michal Kalecki)를 계승한 급진주의나 구조주의자(structuralist) 중엔 권력 · 계급 · 수요 · 성장의 관계를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마르크스경제학을 계승하거나 경제와 사회 제도의 진화를 강조하는 제도학파(institutionalist) 경제학자들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스탠퍼드(2008/2010)는 “당시 영어권 국가들이 지나치게 편협한 신고전파 중심의 정책을 고집했는데, 이러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바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근간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신고전파 경제학자(neo-classical economics)들은 19세기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투쟁의 시기를 거치고,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시장을 중시하지만, 고전파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들은 계급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경제를 분석했고, 장기간에 걸친 경제개발보다는 단기적인 특정 시점의 시장균형(market equilibrium)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이들은 경제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경제를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도록 설명하기보다는 추상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몇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복잡한 경제 이론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결국 신고전파 경제 이론은 많은 약점에도,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주류 경제학이 되었다(Stanford, 2008/2010:73).
캐나다의 경제학자 짐 스탠퍼드(Jim Stanford)는 『자본주의 사용설명서(Economics for Everyone)』 서문에서 “경제학자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신고전파 경제학은 수학을 도구로 사용해 자연과학과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이들은 자본주의를 설명하기보다 옹호하기 위해 복잡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는 경제학자들이 펴내는 수많은 경제 보고서와 정책 제안은 기업 친화적인 경제 제도를 지지하고 소수 기업들만이 경제 정책의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는 경제학자들의 엘리트주의 앞에서 보통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것을 우려했다(Stanford, 2008/2010:12~15).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Robert Heilbroner) 역시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저 떠들썩한 지식인이어선 안 된다. 세상을 연구 주제로 삼고, 세상일에 분노하기도 하고, 필사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한 대담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Heilbroner, 1986). 학자들의 이러한 견해는 정치경제학이 경제학으로 명칭을 바꾸어 가는 시대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저항
밀레니엄 세상이 시작한 지도 십여 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장경제는 갈수록 치열해져 간다. 사회복지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부담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황폐한 노동자들과 그 극단에 있는 자본가 사이의 상황은 빠르게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실제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가 열렸는데, 시위대는 ‘미국의 최고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금융 중심가인 월가의 금융 회사들이 비윤리적인 기업 활동과 부조리를 저질렀고, 정치권이 이를 방조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99%의 힘’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포섭되어 ‘고학력 저임금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저항은 당시 1500여 개의 도시로 확산되었다(≪국민일보≫, 2011.10.16).
사실 냉전 체제가 해체된 이후,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그들만의 민주적 정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힘겹게 에너지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비민주적인 것들에 저항하자는 사회적 관심과 지지는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주류 담론에 대한 저항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편의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저항을 실천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거부감마저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저항 정신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고, 패배적인 시각이 만연해졌다. 급진적 정치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사람들은 저항할 수 있는 기능들이 점점 퇴화한다. 저항할 수 있는 법마저 잊고 있다’는 탄식을 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99%가 지속적으로 과거와 같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는 투자은행과 자본시장이 지배하는 ‘금융 자본주의’를 따른다. 1979년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총리가, 1980년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on) 대통령이 기업의 권익을 옹호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조합은 탄압받거나 해체되었고, 사회복지 예산은 삭감되며 노동법과 사회정책은 개악됐다. 이것은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표방한 것으로, 작은 정부를 강조하며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줄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줄인다는(결국엔 폐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영미권에서는 이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근거한 ‘포디즘적 자본주의(Fordism Capitalism)’로 노동자의 계급이 빠르게 분화되어 갔다.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해서 혁명을 해야 한다는 과거의 저항 정신은 강력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대공장(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신분이 나뉘는 현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임금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받는 것이 정치 참여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즉, 이러한 현실에 순응해 가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탈정치화되거나 심지어 보수화된 중산층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기업 경영, 노사 관계, 회계 방식, 금융 체제, 정부 개입, 국제 경영 관계 같은 주요 문제들 앞에서도 유독 ‘시장 기율’ 그리고 ‘자본시장의 독재’라는 원칙으로 빠르게 재구조화되었던 것이다(홍기빈, 2010:130~134).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이 곧 주류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성역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정치경제 문제들을 막연하게 ‘그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21세기 자본주의경제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치경제학이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듯해 보이지만, 정치와 경제는 모든 시대마다 항상 공존해 왔고, 현재에도 때로는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 노동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면서부터 논의되었던 ‘자본’과 ‘자본주의’는 이를 둘러싼 많은 내용들과 결합하면서 상당히 활발한 화학적 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비록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만드는 주류 담론에는 정치경제학에서 정치적인 것을 배제하려고 하고 있지만, 예컨대 정치경제학자들은 노동을 하는 인간과 그 노동의 가치 · 환경 · 구조 · 이윤 · 생산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했고, 자본주의가 시스템으로서 역사를 확장시키면서는 경쟁, 투자, 성장, 개발, 고용, 실업, 분배, 복지, 정부, 자유무역 같은 주제와 주체들을 당대의 주요 논의 의제로 삼았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연구자들
커뮤니케이션이 학문으로 발전하면서, 정치경제학과 사상적 · 형식적 · 내용적 측면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학문으로 발전한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은 1970년대 이후 ‘미디어 경제학’, ‘미디어 정치경제학’, ‘정보의 정치경제학’,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문화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학자의 연구 분야 중 하나로 발전했다.
그리고 시대와 국가(혹은 대륙)에 따라서도 주요 연구의 분야나 접근 방법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는 나라마다 다른 정치경제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 활발하게 이론화되어 가던 마르크스 시절의 비판적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고 있어, 정치경제학자들이 고민하고 탐구했던 주요 의제들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도 고스란히 적용 · 비판되고 있다.
예컨대 초기에는 고전 정치경제학에 영향을 받아 역사 · 사회적 총체성, 도덕철학, 그리고 실천에 대한 고전학파의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시장보다는 공동체를 주장했던 사회주의자와 노동을 정치경제학의 중심에 두었던 마르크스 사상에 치우치기도 했다. 그러다 신고전주의 정치경제학파 · 제도학파 · 규제학파 · 세계체계이론 등 네오마르크스주의와 만나면서 북미와 유럽에는 페미니즘, 환경보호, 공영방송, 정보 시스템과 기술 등으로 확대되었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역사를 연구한 모스코(1996)는 “정치경제학자들은 권력과 부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들은 문화적 · 사회적 일상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했고,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은 매스미디어, 정보, 오락 시스템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탐구한다”고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구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역사 분석, 폭넓은 사회 총체성의 이해, 도덕철학 또는 사회 가치 및 바람직한 사회질서에 대한 연구, 그리고 사회적 개입 또는 실천 등 네 가지 분야에 대해 주로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분석을 위한 출발점과 초점에서 역사적 접근은 정치경제학이 긴 역사 및 방대한 유기적 총제성과 떼어 낼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본질을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도 그대로 유지 · 계승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연구의 접근 방법 개발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매체와 그 발전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세기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인쇄 미디어와 전파 미디어, 텔레커뮤니케이션(통신선을 이용해 자료를 전송하는 전기통신) 미디어 사업은 생산 초기 정치경제학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당시 고전적 정치경제학자와 이들에 영향을 받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미국의 미디어 산업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 산업까지 통합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며 기업들의 생산과 노동과정, 독점자본주의와 임금노동제 같은 이슈들을 연구했던 것이다(Danielian, 1939; Herman & Chomsky, 1988; Mattelart, 1991; Schiller, 1973; 1984).
그리고 초국적의 다각화된 미디어 기업들(conglomerates)의 출현으로 대량소비 경제체제가 확산되는 것을 주목하면서, 소비의 사회적 관계와 조직 구조를 포함해 가치 창출의 전 과정을 연구하게 된다. 즉, 소비의 증대와 과잉생산이라는 경제적 위기에 대한 구조적 반응 작용과 정치 위기에 대한 사회적 반응 작용으로서 소비 증대를 고찰하기 위해 ‘소비’를 연구 문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량소비와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확신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은 전통적 연구 방식이 아닌 다른 개념적 도구를 시도했다. 예컨대 정치경제학적 연구는 사업체가 아닌, 가구를 중심으로 한다는 기존 정치경제학자들의 분석 단위를 시청자 · 청취자 · 구독자 그리고 소비자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수용자(audience)’라는 (당시에는 새로운)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20세기 초 · 중반까지, 정부와 국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생산자고 배급자며 소비자 · 규제자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에 여러 세대의 정치경제학자들은 군-미디어-텔레커뮤니케이션-컴퓨터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기도 했다(Mosco, 1989a; Roach, 1993a; Schiller, 1969; 1992).
간햄이나 실러, 스마이드 같은 학자들은 국가가 소유 혹은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텔레커뮤니케이션 · 방송 · 정보 시스템들을 구축하는 데 국가와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탐구했고, 공영 혹은 공익적 접근 방법과 시장원리 중심의 접근 방법의 정책과 규제 후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Garnham, 1991; Shiller, 1982; Smythe, 1957). 이들의 접근 방법은 후에 텔레커뮤니케이션 · 방송 · 정보 시스템에 대한 공익적 접근권과 통제를 확보하려는 사회운동들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20세기 후반에 와서 머독(Murdock, 1990a; 1990b)은 미디어 산업의 사유화가 접근권의 불균등 · 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시장성 · 자본으로부터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공론장, 시민사회, 그리고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발전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 세계적으로 식민통치 청산운동이 활기를 띠면서,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을 개발하자는 국제조직 ‘비동맹중립운동’이 출범했다. 이 조직은 불균등한 부(富)의 분포를 수정하기 위해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가 요구된다는 것을 유엔(UN)에서 밝혔고, 이어 유네스코(UNESCO)에서는 “신국제정보통신질서(NWICO,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 운동을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당시 허버트 실러(Herbert Irving Schiller)의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나 보이드배럿(Boyd-Barrett)의 ‘미디어제국주의(media imperialism)’ 이론이 확산되면서, (특히 정치경제와 문화의)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이 제국주의의 식민 국가였던 제3세계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기도 했다. 결국 격동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은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개념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때 관련 제 문제를 찾아 다양한 학자의 방법과 이론으로 탐구를 지속하게 된다.
연구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초기 연구자들은 대부분 경험주의(empiricism)에 영향을 받았지만, 경험주의와 차별화하는 것이 연구 방법론의 목표였다. 냉전 이후에는 실증주의적 접근 방법을 적용하는 행태주의(behaviorism)에 가깝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행태주의와 차별화하기 위한 연구 방법을 고민했다(Mosco, 1996:95~97).
그런데 실증주의적 설명에 맞서 문화주의 접근 방법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던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은 서서히 대립을 하게 됐다. 예컨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 방법에 대한 갈등이 커지면서 북미,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지역 간 혹은 같은 지역 내에서도 학자들 간의 방법론과 연구 범위에 대한 주장이 나뉘게 되었다. 때로는 상대편과의 이질감을 주요 논쟁으로 끌어오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그렇게 재편된 지역별 학자들은 서로를 의식하면서 상대의 연구 방법론을 공격하거나 비판하기도 했고, 스스로 비판을 수용해 기존 이론을 수정하면서 이론적 틀과 방법론의 정당성을 찾는 노력을 했다.
또한 학문의 내연과 외연을 넓히려 했던 학자들 중에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과 협업을 시도하거나, 혹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적 방법론과 이론을 개인의 연구 주제에 적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70년대 후반 이후 영국의 제임스 커런(James Curran)과 콜린 스파크스(Colin Sparks)는 계급 분석에 역점을 두면서 정치경제학적 프레임에서 계급을 연구했다. 핀란드의 카를레 노르덴스트렝(Kaarle Nordenstreng)은 국제 커뮤니케이션 연구 발전과 NWICO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역동성과 정보 유통의 불균형을 시정하거나 매스미디어의 민주화 노력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밖에도 캐나다의 토머스 구백(Thomas Guback)은 국제 영화 산업의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했으며, 스튜어트 이웬(Stuart Ewen, 1976)은 광고 산업의 발전에 따른 대중 소비의 사회적 의식 구성을 연구했고, 댄 실러(1981)와 엘리자베스 아이젠스타인(Elizabeth Eisenstein, 1979)은 신문 매체의 사회적 관계와 광고주와 대중 소비자 시장을 구축해 가는 과정을 연구했다.
1980년대 이후 재닛 와스코(Janet Wasko, 1982)는 영화 산업과 필요 자본 조달, 금융 조달 사이의 상관관계 추이를 실증 연구했고, 허먼과 촘스키(Herman & Chomsky, 1988)는 인쇄 매체 소유 집중 문제, 국가의 선전과 홍보 기능을 탐구했으며, 섯 재일리(Sut Jhally, 1990)는 광고 · 수용자 및 문화에 관한 이론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연구했다.
초기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둘러싼 정치, 자유, 경제, 복지, 문화 발전, 사회정의, 평등, 공동선 같은 문제들에 관심을 두다 보니 매체경제학적 접근의 연구가 주류였던 것도 사실이다. 즉, 소유 집중, 중앙지주회사 통제 집중의 구조적 문제를 우선 파악하다 보니 마르크스의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 structure)의 명제에 영향을 받아 경제 결정론적(economic determinism)이고 경제 환원주의적(economic reductionism) 관점이 이후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2000년대부터는 좀 더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인용하게 되는 연구가 소개되었다. 예를 들면 닉 다이어-위데포드(Nick Dyer-Witheford)는 서구의 맥락에서 형성된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근거한 『사이버-맑스: 첨단 기술 자본주의에서의 투쟁주기와 투쟁순환(Cyber-Marx: Cycles and circuits of struggle in high technology capitalism)』(2003)을 발표했고, 런던 브루넬(Brunel)대학에 있는 마이크 웨인(Mike Wayne)은 『마르크스, TV를 켜다: 마르크스주의 미디어 연구의 쟁점과 전망(Marxism and Media Studies: Key Concepts and Contemporary Trends)』(2003), 『초보자를 위한 마르크스의 자본론(Marx’s Das Kapital for Beginners)』(2012)이라는 저서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그리고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계급 · 노동 · 생산양식 · 자본 · 국가 · 기술 등을 주목하면서 21세기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벤 바그디키언(Ben H. Bagdikian)은 『미디어 모노폴리(The New Media monopoly)』(2004)에서 급격하게 진화하는 디지털 세계가 전통적인 미디어 세계에 더해지면서, 미디어 독점이 심화되는 산업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데이비드 헤스먼달프(David Hesmondhalgh)는 『문화 산업(The Cultural Industries)』(2012) 이후 2013년 『왜 음악이 중요한가(Why Music Matters)』에서 음악 산업에 대한 비판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생산 · 소비되는 정보나 문화를 권력의 불평등, 명예, 이익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이것들이 부유층과 권력자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데스 프리드먼(Des Freedman)은 미디어와 권력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미디어 정책 결정 과정과 규제를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탐구하는 학자다. 초기엔 유럽 내 인터넷의 매스미디어 효과를 고찰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주요 미디어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했으며, 2008년엔 『미디어 정책의 정치학(The politics of Media policy)』을 발표했다.
2011년 글로벌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소유한 신문사 ≪뉴스오브더월드(News of the World)≫의 도청 스캔들 이후, 언론사 기고와 인터뷰 · 논문을 통해 머독을 비롯한 미디어 권력과 자본에 대해 적극 비판하고 있다. 최근 미디어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미디어 권력의 모순(The Contradictions of Media power)』(2014)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캐나다의 1~4세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들의 주요 연구 분야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할 예정이다. 즉,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 미디어 환경의 빠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진일보했는가를 지켜볼 수 있는 유용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미래에 작은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본문에 소개될 연구자들의 연구 내용과 관련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향후 좀 더 많은 이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심도 있게 재평가 · 재해석되어야 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남아 있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저자 빈센트 모스코 역자 김지운
책소개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이란 무엇인지 개괄 소개하고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상 품화, 내용의 상품화,노동의 상품화, 커뮤니케이션과 집중 등 상품화, 공간화, 구조화로 나눠 커뮤니케이션정치경제학 이론 전반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목차소개
1.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 지형도
2.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
3.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4.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 성찰과 쇄신
5. 상품화
6. 공간화
7. 구조화8. 인접학문들의 도전 : 문화연구와 정책연구
클라우드와 빅데이터의 정치경제학
글 쓴 이 : 빈센트 모스코
출 판 사 : 커뮤니케이션북스
책소개 클라우드 컴퓨팅은 왜 정치경제학의 분석 대상인가?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우려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작용인가? 거대 자본과 권력의 결탁, 신기술 도입에 따른 실업, 디지털 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다. 문제 해결의 방법은? 기술 낙관론에서 벗어나 역사·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비판·평가가 필요하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자 빈센트 모스코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담론과 실재를 분석했다. 정보 자본주의의 명암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역자 서문
감사의 글
01 왜 클라우드 컴퓨팅인가
02 컴퓨터 유틸리티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의 전환
클라우드 컴퓨팅의 정의
초창기 클라우드 시스템: 컴퓨터 유틸리티와 비디오텍스
소련과 사이버네틱 시스템
칠레와 미완의 사이버신 실험
미국 국방부와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무엇인가
클라우드 컴퓨팅 유형
현재의 클라우드 컴퓨팅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
클라우드 시스템을 유틸리티라고 보아야 할까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 선도업체와 후발업체5
통신사와 클라우드 시스템
미국 정부는 왜 클라우드 시스템과 클라우드 관련 사기업들을 이용하는가
중국의 클라우드 컴퓨팅
03 클라우드 컴퓨팅을 둘러싼 신비주의
클라우드 서비스 광고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블로그
민간 싱크탱크와 클라우드 컴퓨팅 홍보
클라우드 컴퓨팅의 세계화
클라우드 컴퓨팅 로비 활동
클라우드 서비스 엑스포: 무역박람회를 통한 클라우드 컴퓨팅 홍보
04 클라우드 컴퓨팅의 어두운 면
e오염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 문제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에서의 노동: 할 것인가, 말 것인가
05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을 둘러싼 문화담론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빅데이터 분석과 디지털 실증주의 비판
구름(클라우드)을 둘러싼 문화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에 나타난 구름(클라우드)의 지혜
구도(求道)의 방해물로서 구름(클라우드)
상상력의 구름과 클라우드 컴퓨팅
맺음말: 허공에 뜬 구름(클라우드)